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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암리 고분군

    복암리 고분군

    • 소재지 : 나주시 다시면 가흥리 369
    • 지정번호 : 도지정 기념물 제53호
    • 소유자 : 사유
    • 규모 : 총높이 280cm, 비신 높이 245cm, 비 너비 118cm
    • 시대 : 1901년
    • 지정년월일 : 1981년 10월 20일

    - 위치 : 다시면 가흥리 453-2번지

    무숙공(武肅公) 최희량(崔希亮, 1560~1652)장군을 모신 사우.1984년 5월 건립.

    복암사

    복암사

    - 위치 : 520-930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49번지

    복암사는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419번지 승걸산(僧傑山) 아래 좁은 산간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 백양사의 말사입니다.

    절은 언제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 문헌 기록이 없어 잘 알 수 없으나 절에서 전하기고는 654년(백제 의자왕 14)에 보광사(普光寺)의 20여개 암자 중의 하나로서 아신선사(安信禪師)가 창건하면서 복암암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고려 시대 때인 1219년(고종 6)진각국사(眞覺國師)가 중창하여 복암사라 했으며 그 뒤 1601년(선조 34)에 사명대사(四溟大師)가 3창했다 전해진다. 근대에서의 절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선암사의 이월영(李月泳) 스님이 1939년에 지은 선암사 [대각암상량문(大覺庵上樑文)]가운데의 '복암사 고화봉(伏巖寺 住持 高華峰)'이라 적혀져 있는 현판입니다. 이 현판으로 1939년 당시 복암사가 잘 유지되고 있었고, 아울러 절의 주지가 고화봉(高華峰)임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복암사가 선암사의 말사였으므로 대각암 중수에 복암사에서 시주금을 보탰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보다 앞서서는 1974년에 세워진 원명(圓明) 스님의 공덕비를 통해 1904년에 원명 스님이 절을 중건하면서 관음전·삼성각·수학당(修學堂)을 중수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1992년에 건축불사를 마무리하여 현재 큰법당·삼성각·요사 등의 전각이 있다.

    복암사전경 복암사전경 복암사전경

    창계서원

    창계서원

    - 위치 :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가운리

    창계서원은 나주임씨의 집성촌중 하나인 다시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중인물인 임영(林泳)을 배향하고 있다. 1711년(숙종 37)에 창건되었다가 고종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1871년 훼철되었으나 1928년에 다시 복설되었다. 향사일은 매년 9월 9일이다. 이곳에 배향된 임영(林泳)은 조선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였다. 호는 창계(滄溪)이며 이조정랑.검상.부제학.대사헌 등을 거쳐 참판을 역임했다.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에게도 사사한 기호학파(畿湖學派) 학자였으나 이기론(理氣論)에 있어서는 이이(李珥)의 학설을 따르지 않고 다소 다른 견해를 제시하여 이황(李滉)과 이이의 절충적인 입장을 취했다. 문집으로는 《창계집(滄溪集)》이 있으며 이곳 나주 창계서원(滄溪書院)에 배향되었다

    정도전 유배지 소재동비

    정도전 유배지 소재동비

    소재동은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 백동마을 서쪽에 있는 골짜기 나주정씨 문사자락에 위치한 한적한 산골이다. 뒷산은 백룡(白龍)산 이요, 앞산은 칠두봉으로 칠봉산(七峯山)이다. 서쪽에는 문평으로 넘어가는 대오개라는 고개가 있다. 삼봉선생이 거처한 집터 위에는 현재 나주정씨 정자신의 묘가 있으며 선생의 집터는 500년 전 정자신의 아들인 정식장군이 부친의 묘 옆에다 묘막을 짓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던 곳이다. 정식장군은 조선세조때 궁궐에 불이 났을때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세조를 구해낸 인물로 병조참판에 오른 인물이다. 현재는 대나무밭으로 변하였으나 십여년 전만 해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회진현 거평부곡에 속한 이 소재동(消災洞)에서 유배를 살았던 정도전은 포은 정몽주와 쌍벽을 이루는 고려말의 경세가로 중국대륙의 신흥강국 명나라를 가까이 하여 원나라의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친원파들로부터 배척을 당하여 유배를 오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그의 이상을 펼칠 원대한 계획을 구상하였으며 소재동 사람들의 순박한 삶에서 크게 감명받았던 것으로 그의 문집에서 밝히고 있다.

    다시민속보존회(회장 이재홍)가 2001년 5월에는 소재동비라는 기념비를 세워 정도전의 후손인 봉화정씨 문중인들과 함계 제막식을 갖기도 하였다.